[찬가람] 꽃과 나무

2014. 11. 15. 00:26

주은찬X청가람

꽃과 나무



나무는 불을 살린다. 네가 나에게 목생화(木生花)를 아느냐 물었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누군가를 온 힘을 다해 끌어 안고 싶다는 기분도 뭔지 알 것 같았다. 망설이는 내게 묻는 네 눈이 오래된 나무처럼 곧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는 붉게 타올랐기 때문이다. 눈 속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봄의 꽃들보다도 네 눈은 선명하고 붉었다. 꽃보다도 붉고, 불꽃보다도 선명하게 타오르는 네 눈동자에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나는 이렇게나 변변치 못한 녀석인데, 너에 비하면 그 어느 것도 나을 것 하나 없는 녀석인데, 너는 끝까지 나를 믿어주었다. 불은 나무를 태워 솟구치는 게 아니라 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던가. 그래서 나는 꽃이라고. 네가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피는 꽃이라고.

 나무에서 늦되게 피어오르는 불꽃은, 그만큼 더욱 환하게 타올라 빛난다고 그랬지.​ 그저 기다리겠다고 말하며 준비되지 않은 나를 널 배웅하는 길로 이끄는 네 손은 평소 네 모습과 달라 너를 의지하고 싶게 만들었다. 결국 야속할 만큼 활짝 열린 문 앞에서 나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네 표정을 마주하고 혼자서 서럽게 울었다.

 마지막 겨울, 너와 나만이 남아 보낸 밤. 보름달을 등지고 작별이 아닌 재회를 약속하는 너 때문에, 나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 했음에도, 동시에 모두 포기 할 수가 없어 네가 가고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네 발자국을 핥고 또 핥으며 울었다. 

아아, 나는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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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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