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x백건

2인용 식탁






카페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는 최근 입소문을 빠르게 타고 핫플레이스로 부상 중인 서울 근교의 작은 카페였다. 시내에서 제법 먼 거리의 작은 동네에 위치한 30평 남짓한 이 작은 가게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 해 겨울로, 그 해 가을에 가게가 오픈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일 만큼 빨리 유명해진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 세렌디피티는 그러한 반짝하는 유명세에 안주하지 않고 한결같이 저렴한 가격과, 그에 뒤지지 않는 맛, 그리고 고풍스럽고 안락한 분위기를 유지한 결과,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명실상부 맛집으로 거듭났고 현재는 손님과 돈을 갈고리고 싹싹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물좋은 핫플레이스를 가장 많은 손님들이 찾아 오는 날이 휴무인 월요일이라는 점이었다.

"확,씨 한번만 더 알짱거려라, 어?!"

사실, 카페 세렌디피티의 인기 뒤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 보다도 사장과 점원의 잘난 얼굴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 몸 좋고 '잘생긴 오빠들'이야 말로 여고생, 여대생, 직장인, 그리고 주부층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카페가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이 잘생긴 오빠들이, 매주 월요일 아침만 되면 아주 희한한 구경거리를 만들어내고는 했던 것이다. 


"저놈들은 왜 저렇게 미련하답디까?"

"몰라 낸들. 존나 더럽게 끈질기네."


빙 둘러싼 손님 무리들은 휴대폰이나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려댔다. 오빠! 혹은 누구야!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마치 아이돌 팬클럽을 떠올리게 하는 이 광경과 함께하는 월요일 구경거리의 메인은 커다란 일수가방을 품에 끼고 나타난 험악하게 생긴 형님들을 잘 생긴 오빠들이 무찌르는 광경이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연상시키듯 엎어치고, 매치고, 찌르고, 패고, 발로 차는 장면은 동네 여고생들을 비롯해 많은 여자들에게 좋은 눈요깃거리였다. 


"이 씨발....꺼져 새꺄!"


연장만 안 챙겼지 어디서 껌 좀 씹다온 게 분명한 이 미남들은 예사롭지 않은 몸짓으로 불청객들을 실컷 갈궈준 다음에는 꼭 가게에 들여놓은- 꽤 값이 나가보이는- 테이블이나 의자 같은 것을 일수꾼들에게 집어 던지는 것으로 싸움을 요란하게 마무리 짓곤 했는데, 자칫 험악해보일 수 있는 일련의 광경들이 이렇듯 잘생긴 사장과 점원 앞에서는 단순히 멋있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신기한 것은 동네가 떠나가라 소릴 지르며 난리를 피우는데도 동네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인심이 좋은 건지 무관심한건지. 어쩌면 이 카페의 단골 고객층인 동네 부녀회라던가, 주부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지만 좌우지간 이 동네 주민은 한번도 경찰에 그들을 신고하는 법이 없었고, 덕분에 카페 세렌디피티는 개점이래 단 한번도 그런 잡음 없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이제 가구점에 연락 넣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카페 세렌디피티는 평화롭다. 다리가 하나 부러진 채 애처롭게 고꾸라진 의자를 들어 구석에 가져다둔 현우가 백건을 향해 투덜거렸다. 신경질적인 표정이 방금 전 카메라와 선물 세례를 받으며 웃어주던 뻔뻔한 면상과는 천지차이였다. 백건은 카페 앞 계단에 걸터 앉은 채 팔을 괴고 현우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부러진 의자 다리를 의자 몸에 이리 저리 붙여보려고 낑낑거리는 모습이 한심했다. 어차피 그거 못 고친다니까. 부러진 의자의 한 쪽 다리는 저 멀리 가게 밖 콩크리트 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을 터였다. 

"그냥 사, 새로 사면 되지."
"돈은 누가 벌고요?"
"열심히 뺑이치면 되겠지."

정 안 돼면 니 월급에서 까고. 청소기를 끌고 온 백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노동청에 신고할겁니다. 현우는 지지 않고 가자미눈을 하고선 대들었다.

"어쭈, 신고한다 그거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자리까지 주는데 월급좀 깠다고 나를 신고하겠다 이거지?와, 이거 완전 배은망덕한 새끼네."
"그러게 돈 좀 제 때 갚으면 좋잖습니까?"
"이새기 이거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야 강도."
"그럼 사장 당신은 택사스 목화 농장 주인이고. 노예의 폭동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드리죠."
"어, 그거 좋다. 해 봐. 어디 한 번."

저리 비켜. 현우의 발을 툭툭 걷어찬 백건은 청소기 전원을 켰다. 위이잉, 진동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 위로 흩어진 나무 조각들이 흡입구에 빨려들어간다. 현우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다 가게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청소기가 다 쓸고 지나간 자리를 굳이 쓸어내는 건지. 꼭 모자란 놈 같이 구는 현우였다.

"아,... 근데 나 이번엔 진짜 돈 없는데."
"맞아요, 제 월급도 없습니다."
"그래 넌 좀 닥치고."

월세내고, 원두사고, 밀가루랑, 설탕이랑.....,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는 백건을 향해 현우가 혀를 찼다. 남는 게 돈이라 돈 계산하는 데는 눈이 어두워서인지 백건은 가끔 물건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특히 월요일만 되면 찾아오는 일수꾼 나부랭이들만 보면 열이 받아서는 살림살이를 내던지곤 했다. 

"그래, 뭐. 장사 잘 되고 있잖아, 괜찮아, 곧 갚겠지. 여차하면 집에다가 좀 땡겨 달라고 하지 뭐."
"당신 어머님이 내주신답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봤어?"
"사모님은 바늘로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오실 것 같던데요."
"그럼 니네 형한테 달라고 해."
"돈이 썩었습니까? 사장님 가게에 형의 피같은 돈을 쏟아붓게. 저는 여기에 한 푼도 투자 안 할겁니다."
"꼴값떨고 앉아있네. 형한테 연락하기 민망하다고 솔직히 말하지 그래."

월급 받아 먹는 주제에 너는 입만 살았지 아무튼. 백건의 이죽거림에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백건에게서 청소기를 빼았아 들었다. 저 멀리까지 날아간 깨진 나무조각의 톱밥이나 유리 파편같은게 흡입구에 빨려왔다. 그 때마다 요란하게 청소기가 덜덜거린다. 백건이 현우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윽. 운동화 코가 제법 아프게 걷어차는 바람에 입술 사이로 짧게 신음이 샜다. 

"저 쪽, 저기도 쓸어. 나중에 검사할거야."
"지랄하지마시죠. 저기 깨끗하잖아요, 왜 때립니까? 저도 한대 걷어 차도 됩니까?"

현우는 투덜투덜 청소기를 끌고 가 백건이 가리킨 곳을 쓸었다. 항상 백건은 사고는 자기가 다 쳐놓고 수습은 뒷전이다. 부서진 의자 개수를 하나 둘 떠올리며 현우는 형의 번호를 기억하려 애썼다. 010...그리고 뭐더라. 아마도 남은 번호는 2층 자기 방 옷장에 걸어둔 자캣 주머니 안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테다.


다 끝나면 들어와서 밥 먹어. 그 때 등 뒤에서 백건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했다. 희미하게 커피 냄새가 났다. 아, 한정식 먹고 싶은데. 밥과 국 따위를 떠올리며 현우는  짜증스레 바닥을 청소기 흡입구로 툭툭쳤다.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 청소는 왜 나한테 시켜? 혼자 곱게 자라 세상 모르고 속 없는 인간 같으니.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현우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아침햇살이 비스듬히 내리쬐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이곳, 카페 세렌디피티의 아침은 평화롭다,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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