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花傷





 백건은 각성이 지나치게 늦은 편이었다. 때문에 그는 스무 살이 다 되도록 자신의 꽃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백건처럼 각성을 하지 못한 사회에서 ‘덜 자란 것들’로 취급받았다. 그것은 백건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뛰어난 육체적 요소와 모순되는 그의 미성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을 모았고 동시에 한 쪽에선 물어뜯기 좋은 적당한 놀림거리가 됐다.


그중 대부분은 혈통에 손색없는 종자를 받아 조금이라도 더 낳은 종으로의 개화를 노리는 욕심에서 비롯된 시선이었다. 남들이 각성을 시작하는 열다섯 무렵부터 줄곧 자신을 따라다니던 노골적이고 천박한 시선을 향해 백건은 거침없이 욕을 갈겼다.


“짜증나....”


짜증나 죽을 것 같다고. 백건이 작게 입을 비죽이며 쿵쿵 발을 굴렸다. 백건에게는 이렇듯 다소 어린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오는 날이면 그것이 심해졌다.


바로 지금처럼-


“주은차안...”


쿵쿵 바닥을 차던 것이 어느새 온 몸으로 심기가 불편함을 표현하며 칭얼거린다. 주은찬, 어떡하지-응? 어떡할까. 심드렁한 말투로 백건이 투덜거렸다. 삐걱 삐걱 의자와 테이블이 백건의 움직임에 함께 흔들린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은찬은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덩치도 만만치 않은 놈이 이렇게 눈앞에서 산만하게 수선을 떨면 으레 그렇듯 집중이라는 걸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아, 이 책 마저 읽어야 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손은 책을 덮는다.


“-그냥 맘을 좀 더 편하게 먹으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때 되면 찾아오겠지.”

“빌어먹을. 글쎄 그러고 기다리는 게 대체 몇 년째야?”


그 말 대로다. 본래 그 품종이 좋을 수록 꽃의 개성과 희소가치가 두드러지는 법이었는데 동시에 그런 꽃을 가진 사람들은 각성 시기가 늦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백건은 각성이 늦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은찬은 백건의 각성이 늦어지는 이유가 주변의 지나친 관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전히 성인의 몸을 갖추고도 단지 ‘각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손조차 댈 수 없는 그를 보고 있으면 누구든 지 그런 종류의 관심과 걱정을 하며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방법?”


미끼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백건의 노란 색 두 눈이 호기심에 가득 찬 채 빛을 냈다. 은찬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침없는 호기심 앞에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백건은 여전히 아이처럼 깨끗하고 순수했다. 아직도 새하얗기만 한 백건의 등을 볼 때면 은찬은 그것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고는 했다.




 은찬은 백건과 함께 각성이 늦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그는 열여덟이 되던 여름, 각성을 했다. 붉은 양귀비였다. 각성은 갑작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준비되고 예견된 것에 가까웠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와 은찬을 덮쳤고 지독하게도 그를 괴롭혔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은찬은 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놀란 백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직도 속이 안 좋아? 백건은 은찬의 굽어진 등을 두드려 주었다. 툭툭, 백건이 등을 두드릴 때마다 뱃속이 뒤틀렸다. 불현듯 입 안이 오그라들더니 한가득 침이 고였다. 코끝에서 짙어진 꽃향기 같은 것에, 턱이 제 멋대로 벌어진다. 토할 것 같아.


-야. 주은찬!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 조각조각 나 있던 작은 실마리들이 그 짧은 순간에 틀에 하나로 뭉치더니 구체적인 형태로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각성이었다. 은찬은 잠시 당황했지만, 재빠르게 행동했다. 은찬은 백건을 뿌리치고 달렸다. 자신을 부르는 백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갈고리가 되어 발목을 아프게 찢었다. 발이 젖은 흙바닥을 차고 오를 때마다. 그 위로 운동화 자국이 하나 둘 남을 때마다, 그 자리에는 짙은 꽃향기가 남았다.


악취처럼 지독해지는 꽃향기에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뜀박질을 멈추면 그 짙은 향기가 자신을 집어 삼키고야 말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꽃덩굴에 발이 묶여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돌이킬 수가 없다. 발이 묶여 달아나지 못하고, 백건이 금새 뒤를 쫒아와 버리면, 그래서 백건이 이 역겨운 악취의 진상을 깨달아 버린다면!


흙을 파내듯 달려가는 뜀박질에 운동화 앞코가 얼룩지고, 끈이 풀려갔다. 은찬은 멈추지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백건의 목소리와 그림자가 닿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은찬의 몸이 무너지듯 화단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욱, 우웩....!


 입을가린 은찬의 손가락 사이로 빨간 꽃이 한 움큼씩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나 둘, 피가 터지듯 계속해서 꽃들이 터져 나왔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꽃은 피처럼 붉었고, 상처처럼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찢어지고 뭉개지고. 온전치 않은 꽃들이 침과 뒤섞여 흘렀다. 꽃은 금새 무덤처럼 수북이 쌓여 은찬의 발밑을 에워쌌다.

 꽃 더미 속에서 헐떡이며 은찬은 고개를 도리질쳤다. 미처 나오지 못한 꽃잎들이 목구멍의 점막에 달라붙어 목을 간질였다. 눈앞이 온통 빨갛게 물든다. 황홀하고 아찔하게 향기가 퍼진다. 몸이 마비되는 감각. 꽃잎이 부서지는 냄새에 까무룩-


-아,  욱...! 건아....,백건 ...!


 은찬은 거의 필사적으로, 애타게 백건의 이름을 불렀다. 한껏 꽃을 토해낸 목구멍에 불이 붙어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이 타올랐다. 대답 없이 혼자 부르는 이름은, 그리고 마음은 서글프고 괴로웠다. 방금 전 까지 등을 두드리던 그 손의 온기와 무게와 감촉이 불현듯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애가 탔다. 눈물이 흘렀다. 상처처럼 쓰라리게만 느껴지는 두 뺨의 눈물 자국을 소매로 훔치며 은찬은 피를 토하듯 거듭 백건의 이름을 입밖으로 토했다.


지독한 꽃 멀미였다.


그리고 그날 밤 은찬은 꿈을 꿨다. 뜨겁고 황홀한 꿈이었다. 꿈속에서는, 홀로 멀미했던 그 이름과, 토해내던 마음을 부를 수 있었다. 꿈속에서 백건은 자신만의 꽃이었다. 은찬은 제 꽃을 다루듯 하얀 속살을 헤집고 뜯어내고 단단한 대를 힘껏 꺾으면서 대신 그 등에 자신의 붉은 꽃을 새겨 넣었다. 그 때 움찔 하던 등으로 백건은 울었던가. 


백건이 괴로워하는 것은 못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떨리는 흰 등줄기에 빨간 꽃이 독처럼 번지는 순간 은찬의 괴로움과 슬픔은 잊혀 갔다. 눈물은 마르고 말할 수 없는 황홀한 기쁨만이 찾아왔다. 꽃을 탐하는 은찬의 손길은 뜨겁고 거칠었다. 자신이 토해낸 꽃들을 다루듯 백건을 만졌다. 넘치는 마음이 안타까워 끌어안고, 울고, 입을 맞추고, 동시에 헤집고, 밟고, 부수면서.


하얗고 깨끗한 백건의 몸 위로 수북이 빨간 열꽃이 내려앉았다. 피와, 상처와, 울음과, 꽃이 흰 몸 위에서 터졌고 그 때마다 은찬의 아랫배에선 조용히 열이 끌었다.그러다 잠에서 깬 이른 새벽엔 젖은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침대 위엔 간밤 잠결에 토해낸 지긋지긋한 붉은 색 꽃잎이 수북했다. 온 몸이 꽃무더기로 맞기라도 한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파왔다. 그날 이후 은찬은 걸핏하면 꽃 멀미를 앓았다. 그런 날엔 꿈에 늘 백건이 나왔다.


"...그거 좀 위험하지 않나."

"어차피 계속 이 상태면 너 나중엔 너네 집안 어른들 손에 끌려가서 아무하고나 떡치고 각성하고 씨뿌리게 될 걸."

"이 씨발 주은찬 이게 그걸 말이라고."

"그런 식으로 사고치는 애들도 많은 데 뭘 그렇게 신경쓰고 그래? 걱정하는 부분도, 각인만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건이 네가 자연적인 각성을 정 못 기다리겠다면 그것도 방법은 방법이긴하지."


 얼핏 그럴듯한 대안에 샛노란 아몬드 모양의 두 눈 위로 드리우는 진지한 고민의 그림자에 은찬은 상냥하게 웃었다. 눈앞의 상대는 순진해서 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못내 사랑스럽다. 은찬은 백건을 마주보고 웃으며 처음 각성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를 괴롭히던 꽃 멀미와 밤을 적시던 꿈들이 떠올랐다.


"한번 해 볼래?"


 나랑. 



 그 때처럼, 어쩌면 그 때보다 더 짙게, 악취 같은 꽃향기가 났다.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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