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곽 au

카테고리 없음 2015. 11. 21. 23:43

"그래서, 얘들을 뭐라고 부르는데? 숯댕이?"
"...기왕이면 보일러 요정이라고 해줘."
"벌레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화낼텐데."
"어, 진짜네. 화났다 화났어."

 그것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리를 이루어 백건을 향해 달려 들었다. 백건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다, 곧이어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둘, 따로 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 모여 어느새 위협적인 기세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겁을 먹고 움츠라드는 어깨에 백건은 심술을 부리듯 갖고 놀던 녀석을 내던지다시피 그 무리 속으로 털어냈다. 깨끗했던 손바닥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백건은 손바닥을 털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징그러."

 그 순간 숯덩이들이 말을 알아 들은 것처럼 더욱 발끈하며 검댕을 일으켰다. 백건은 당황해 뒷걸음질 치며 날리는 먼지를 털어냈다. 검댕은 털어내면 털어낼수록 들러붙어 얼룩이 곳곳으로 번져갔다. 매캐한 먼지에 코끝이 간지러웠다. 자꾸만 올라오는 기침에 기다란 속눈썹 끝에는 물기가 서렸다. 그러다 시커멓게 얼룩이 묻은 소매 끝을 발견했을 때, 백건은 울상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다간 옷이 더러워질지도 모르는데. 옷을 더럽혔다고 혼이 났던 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한 번 더 옷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간 아예 발가벗겨 손님에게 보내버릴 테다. 꼬박 하루를 건을 굶긴 주인이 식은 밥덩이를 던져주며 했던 말이었다. 백건은 불현듯 두렵고 겁이났다.

"야! 이..이것들 좀 어떻게 해 봐!"

"그러게, 그러면 화낸다고 했잖아..."

 할 일도 많은데. 은찬은 한숨을 내쉬며 삽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돌리자 숯덩이 틈에서 하얀 얼굴 한가득 검댕을 묻히고 있는 백건이 보였다. 

"세상에, 너 지금 우는거야?"

백건은 대답대신 빨게진 코를 훌쩍였다.

"얘들이 장난 치는 건데 ,, 왜... 울고 그래..괜찮아....?"
"옷, 더러워지면 안된단말야."

 은찬의 시선이 백건이 입고 있는 옷으로 돌아갔다. 화려하게 수가 놓인 옷은 언뜻 봐도 고가의 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황한 은찬은 급한대로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옷을 털어보았지만 묻은 얼룩은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시꺼멓게 번져, 상황은 점점 위태로운 형국이 되어갔다. 백건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이 옷...많이 비싸...?"
"말이라고 해?"
"그..그렇지...,"

은찬은 마찬가지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백건의 눈치를 살피며 얼룩진 뺨을 수건으로 문질렀다. 얼룩을 닦아내자 하얗게 반짝이는 뺨이 보였다. 매일 불 앞에 앉아 그을리고 거칠어진 자신의 손과 달리 달리 새하얀 피부가 무척 보드라워서 자칫 잘못하면 까슬한 광목 수건이 그 뺨에 상처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조심, 얼룩을 닦아낼 때 마다 백건의 짧은 머리카락이 은찬의 코에 닿아 향기가 났다. 은찬은 침을 꼴깍이며 머리칼에 코끝을 자꾸만 부볐다. 향기는 달았다. 그러다 이리저리 불만스럽게 시선을 굴리는 두 눈이 어쩌다 제 쪽으로 향할 때면 백건이 자신을 눈치 챌까 가슴을 졸였다.  고운 얼굴도, 비싼 옷가지도 모두 하나 같이 알고 있는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은찬은 꾹 다물린 백건의 옅은 분홍색 입술을 한 번 만져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너 왜 자꾸 쳐다봐?"
"어,...어?"
"자꾸 보고 있잖아."
"아,냐...안 봤는데..."
"거짓말.내가 다 봤는데."
"...예뻐서."

은찬은 수건을 손에 쥐고 꼼지락 거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예뻐서. 신기해서. 그래서.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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