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카테고리 없음 2015. 11. 21. 23:35

엔드게임

1.

하나, 둘, 셋. 어항 안에는 물고기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아침에 먹이를 주었을 때만 해도 분명 네 마리였는데, 이제 보니 꼭 한 마리가 모자란다. 이상하네. 은찬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머지않아 은찬이 굽어 내려 본 어항의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있는 놈이 보였다. 느긋하게 헤엄치는 다른 세 마리의 살랑거리는 붉은색 꼬리 사이로 보이는 그것은 허연 배를 내놓은 채 죽어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옆구리일까 싶은 부분이 터져 내장인지 뭔지. 아무튼 그 비슷한 게 밖으로 튀어 나와있는 채로 말이다.

곱게 죽지도 못한 몰골은 처참해서 은찬은 솔직히 불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풀어 오른 하얀 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터진 틈새로는 알 수 없지만 징그러운 것들이 튀어 나와있었고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한 장막처럼 빛을 투과한 지느러미가 붉은색을 띠고 투명하게 너울거렸다. 그리고 뿌연 물살 사이로 또렷이 보이는 죽은 금붕어의 누우런 흰자위와 동공이 자신을 원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키우기 쉽다고 그랬는데.

애초에 다른 관상 어종들을 다 제쳐두고 금붕어를 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관리만 잘 해주면 수년씩 살 수도 있다고. 물론 그 정도로 귀찮게 긴 수명을 바라지야 않지만, 어쨌든 금붕어라는 게 다른 것들보다 훨씬 수월한 종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죽어버리다니. 크게 애정을 갖고 기른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 두고 보살피던 것들이 막상 죽어버리자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건아, 너 혹시 금붕어 먹이 줬니?"

그러다 문득 짚이는 구석이 있어 묻자, 등 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백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은 갈아줬고? 또다시 끄덕끄덕.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건을 힐끗 바라본 은찬은 이윽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물 갈아 준 게 언제야?"
"...왜 그러는데?"

대답을 피하듯 되묻는 백건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웠다. 돌아보면 불안을 감지한 듯 아몬드 모양의 노란 두 눈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은찬은 신음하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건은 얼마 전부터 은찬의 금붕어들을 맡아 기르는 중이었다. 은찬이 그렇게 하도록 했던 탓이다. 무엇이든 금방 싫증을 내고 변덕을 부리던 녀석이 유독 금붕어 어항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이 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먹이를 주는 것도, 물을 갈아 주는 것도,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최근에는 모두 다 건의 몫이었다.

언제나 세상을 감정 없이 바라보던 눈이 저보다 약한 그것들을 돌볼 때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싹이 움트듯, 어린 새끼가 땅에 첫발을 내딛듯 설레고 조심스럽게. 그렇게, 주인보다도 더 그것들을 살뜰하게 보살폈을 텐데. 그것이 네 잘못으로 죽어버렸다고 선뜻 말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었다. 어떡할까. 여전히 불안하게 얼어붙은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며 은찬은 고민했다. 백건은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죽었어."
"뭐?"

그래서 은찬은 입을 연 마지막 까지도 조금 뜸을 들이며 고민했다. 예상대로 놀란 백건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읽고 있던 책이 카펫 위로 나뒹군다. 은찬은 건이 설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며 건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불안하게 어항 속을 헤매던 시선이 굳는다. 터진 배 위에 고정된 시선이 위태로워 몹시 염려스러웠다. 평소엔 제멋대로에 사납기만 한 녀석이 왜 이런 일에는 눈에 띠게 여려지고 약해지는 건지. 

"안되겠다, 그냥 보지 말자."

결국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것을 보다 못한 은찬이 두 눈을 가려주고 나서야 건은 막힌 숨을 토해내듯 긴 숨을 뱉으며 안도하는 것이었다. 눈을 가린 손바닥 위를 기다란 속눈썹은 오래도록 불안하게 서걱거렸다. 그러다 백건은 눈가를 덮은 은찬의 손을 그것보다 큼지막한 제 손이 아플만큼 쥔다. 하얀 손등에는 핏줄이 시퍼렇게 올라와 있었다. 괜찮아. 굳어있는 어깨를 쥐고 누르며 은찬은 백건을 달랬다. 괜찮아. 가빠진 숨을 달래며, 거듭 토닥이며, 귓가에, 그리고 뺨에, 입술에 은찬은 제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달래는 동안에도 은찬은 혹시라도 건이 울음을 터트릴까 맘을 졸여야했다. 혹시라도, 저번처럼-

"나 때문이야?"
"...아냐. 금붕어는 금방 잘 죽는데. 건아, 괜찮아. 응? 괜찮다니까."
"그치만, 물. 나 생각해보니까 안 갈아 줬어."
"그럴 수도 있지. 그것 때문만은 아닐거야. "
"그래도-"

 다행이 은찬이 염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건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핏기가 가신 입술이나, 새빨갛게 충혈 된 눈가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은찬은 아직 눈가의 온기가 남은 손을 가져가 건의 손을 맞잡았다. 나 봐. 내가 괜찮다고 하고 있지? 다시 한 번 건을 안심시키듯 속삭이고, 손을 어루만지며 달랜다. 꽉. 무심코 힘이 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은찬은 잡힌 손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말없이 매달리며, 온몸으로 애원하고 갈구하며 불안하고 애처롭게.

"그건, 어쩔 수 없었어."


*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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