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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1 가장 자기 파괴적인 것들

사랑. 그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얼마 전에 읽은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사랑에 미쳐 현해탄에 뛰어든 불륜한 두 남녀. 단지 그것이 사실의 전부일 뿐일 사건을 두고 신문에선 낭만을 지껄이며 종이에 찍힌 활자들이 요란을 떨었다. 그런 가운데 현우는, 만약 경성에 있는 백화점 옥상 같은데서 뛰어내렸어도 그런 찬사를 받았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 했다. 


그들은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하필 재수 없게 그 둘의 터진 시체를 처리하게 될 경찰과 미화원의 원성을 사 죽어서도 욕을 먹을 게 분명했다. 죽음도 갈라서지 못한 사랑?세기의 비극? 현우는 자신이 해당 사건의 기사를 쓴다면 그들이 백화점 옥상이 아니라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것이라고 해도 그런 제목을 붙여둘 것이다. 


불륜 남녀 선상에서 동반자살. 모두를 충격에 빠트려.

한여름의 이기적인 광인들. 

불륜에 미친 남녀 함께 자살.


 배에 타고 있던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졸지에 받게 된 충격과 실망과 분노를 수식어 없이 쓰고, 그 결과 신문에는 감성적인 동정론보다는 날카롭고, 동시에 천박하지 않지만 충분히 모욕적인 단어가 차분히 나열된 글이 실릴 것이다. 


 백건은 여전히 사랑에 미쳐 제 머리에 총을 갈긴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우는 거듭 마른 목구멍 너머로 침을 삼킨다. 자꾸만 초조해지는 참이었다. 그는 백건에게 그가 만약 대가리 터진 사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될 어느 재수 없는 그 집 하인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내게 필사적일 필요가 있어. 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아야한다는 말이지.”


백건이 말한다. 


“글쎄요, 우리가 서로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였습니까.”

“네가 좀 더 열렬히 사랑하고 솔직해 진다면 또 모를 일이야.”

“지금 알몸으로 이야기 하는 것 이상의 열렬함과 솔직함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만”

“그래 네놈이 이렇지.”

"사랑은 내것이 아닐 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법이죠."


건은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나른하게 뻗어온 흰 팔이 현우의 팔뚝을 파고 들어 팔짱을 낀다. 곧이어  건의 밝은 색 머리칼이 그의 목덜미 주변을 간질인다. 현우는 어깨를 쓸다, 건의 뒷 목을, 그리고  툭 튀어나온 척추 뼈 몇개를 더듬으며 등까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손길에 건이 기분좋게 얼굴을 부볐고 그렇게 움직일때마다 건에게서는 살내음이 났다.

  

현우는 깨질뜻한 총소리가 머리를 관통하는 상상을 한다. 한여름 밤 손을 잡고 바다에 뛰어드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옥상에서 뛰어내린 몸뚱이가 무겁게 떨어져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퍽 하고 터진다. 여전히 낭만적이라기보단 끔찍했다.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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