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백건

카테고리 없음 2016. 6. 10. 13:19

"수아누나, 너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었다. 백건은 깜짝 놀라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반짝거리던 눈으로 은찬을 살핀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건가 싶어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은찬은 더이상 뭐라 말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잠시 청소하던 것을 멈추고선 대걸레를 받쳐 잡고는 턱을 괘고 있었다. 새카만 두 눈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고 안을 반쯤 물들여놓은 어둠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은찬의 눈은 몹시 검었다. 아래로는 그늘이 져 있어 백건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나머지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백건은 한발자국 떨어져 주은찬을 본다. 그림자에 뒤덥힌 주은찬은 형태가 또렷하지 않았다. 꼭 어둠에 녹아있는것 같다.

"뭐, 그런가보지..."

불안했다. 불안해서 괜히 수선을 떤다. 평소라면, 자주 그렇게 하듯이 조금은 밋밋한 그 외모를 놀리면서 잘난 척, 장난을 걸어 볼 텐데, 그는 이제 은찬에게 어떤 식으로 대답하는 게 좋은 지 알 수 없다. 단지 그런 것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찬은 아주 잠시 고개를 돌려 건을 바라본다. 건은 간신히 은찬의 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은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꼭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다가, 은찬은 다시 밀대를 잡는다. 바닥을 닦는다. 질척하게 젖은 물소리가 바닥에 부딪쳤다. 철퍽철퍽. 앞뒤를 오가는 움직임은 묘하게 절도있고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후덥지근했던 창고 안이 물걸레질로 더 습해진다. 축축한 기분이.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이 천천히 발밑에 휘감긴다. 은찬은 역시 화가 난 게 분명하다.

"유나비한텐 왜 그렇게 말했어?"

이번엔 도대체 뭐가 문제야? 백건은 당장에라도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은찬의 입술을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을것처럼 일자로 다물려있다. 바닥에 문대어 지는 젖은 물소리는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걷어붙인 셔츠 소매 아래로 은찬의 각잡힌 팔뚝이 보인다. 힘이 실려 앞으로 뻗어가다 다시 뒤로 물러난다. 그때마다 대를 쥔 손과 팔에 얕게 힘줄이 돋는다. 큼지막하고 마디가 깔끔한 손과 오목한 팔목과 직선으로 뻗은 팔을 지나쳐 그 어깨에 이르는 곧은 선은 굵지 않지만 비실비실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자다웠다. 백건은 남자다움으로 빚어진 그 선에 잔뜩 힘이 실리던 때를 기억한다. 은찬의 팔은 거침없이 뻗어와 언제든지 그가 백건을 끝장낼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조금 예민하고, 섬세하고, 그래서 질투를 하지만 결국 다정한 줄로만 알았던 주은찬이 목을 조르던 때 백건은 그것을 깨달았다. 단 한 번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사실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주은찬이 그에게 달려들어 짓눌리고 잡아채여 숨이 막혀 아찔했던 순간.


"너무 예뻐서 그런가."
"...."

너무 예뻐서. 두둥실 떠오른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더이상 백건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하긴, 어쩔 수 없을 법도 하다. 네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은찬이 그렇게 말하며 넓적한 손으로 백건의 뺨을 더듬는다. 손은 뜨뜻했고 땀으로 젖어 미끌거렸다.

"차라리 이렇게."

쿡. 은찬이 손톱으로 뺨을 누른다. 손톱은 아프게 파고 들어 금방이라도 살을 후벼 팔 기세였다. 백건은 굳은 얼굴로 은찬을 내려다 보았다. 은찬은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백건을 보지는 않는다. 은찬의 눈은 아까와 같이 초점 없는 까만눈이았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은찬의 눈동자 속은 까마득한 어둠으로 가득했다. 여기서, 여기까지. 조금 보기 흉해지면 괜찮을까? 은찬은 그렇게 말하며 건의 뺨, 그리고 입술. 목. 어깨. 얇고 단단한 손톱으로 긁고 내려간다. 송곳처럼 낙인을 새겨넣는듯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그리고 목을 쥔다.

"...주은찬"

백건은 더듬더듬 은찬을 불렀다. 응, 건아.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목을 쥐며 은찬이 대답했다. 백건은 작게 숨을 뱉으며 몸을 떨었다. 그러지마. 은찬은 백건의 목소리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은찬이 발 뒷꿈치를 들어 부릅뜬 눈가에 입을 맞추고 안경알 위를 핥는다. 도수없는 유리알이 침으로 질척하게 젖는다. 키스할때처럼 유리알을 닦아대는 혀가 징그러웠지만 백건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간 성난 은찬에게 눈알 하나가 통째로 파먹힐 것 같았다. 주은찬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괴한 공포가 백건을 짓눌렀다.

"앞으로 또 헤프게 흘리고 다니면 가만 안 둘거야."

은찬은 연인처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눈은 더 이상 생각에 잠겨있지 않아고, 오히려 기쁨과 행복에 겨워 반짝이며, 백건을 향해 은찬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답 해."
"응..."
"착하다."

백건은 겁을 먹은 채 대답한다.

"사랑해."

이번엔 꼭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먹먹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축축한 입술이 침을 흘리며 건의 입술을 짓눌렀다. 다음엔 혀가 들어와 입안을 온통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백건이 숨을 토해낼 때마다 은찬이 게걸스럽게 그것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숨이 막히고, 아. 숨을 쉬려고 하면.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도록 단단히 끌어안고 키스해버려서. 백건은 몸부림 쳤다. 둘의 몸이 미끄러은 바닥 위를 구른다. 우당탕탕. 창고 선반 물건들이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를 부딪친 백건은 가벼운 뇌진탕 같은 걸 느끼며 은찬을 올려본다. 머리는 멍한데 은찬이 허겁지겁 옷을 벗기고 있었다. 은찬은 빠르게 건의 옷을 벗긴 다음 백건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가져다 댔다. 백건은 몸을 꿈틀거리며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이미 반쯤 젖어있는 것이 엉덩이엔 질척하게 문질러지고 있었다.

"잠..잠깐만 갑자기 왜이러는-악. 싫어. 싫어 주은찬!"
"그런게 어딨어. 사랑한다고 했잖아"
"미친. 하지마!하지말란 말이야! 아악!"

백건은 비명을 지른다. 잘 짜여진 전신의 근육들도 한꺼번에 뒤틀리며 같이 비명을 질렀다. 은찬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등허리가 뒤틀리고, 휘고. 그러는 동안 뜨겁고 좁은 공간은 조금씩 넓혀지더니, 어느새 씹어 먹을 것처럼 깊은 안쪽으로 살덩이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싫어. 싫은데. 아. 그렇지만 기분은 좋고.

그 짓을 하는 동안 몸의 자세는 몇번씩 바뀌었다. 은찬은 백건의 뒷목을 잡고 누르며 숨을 쉬듯 움찔거리는 그 구멍의 틈새로 성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백건의 허리가 잘게 떨리며 짐승처럼 앞으로 쭉 뻗는다. 몸이 밀리고, 젖은 살덩이가 잔뜩 주름 진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밀려나고 하얀 등이 뒤틀렸다. 은찬은 허리만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성기가 쉬지 않고 몸 안을 드나들고 있었다. 까슬한 털이 엉덩이에 비벼질 때 마다, 퍽퍽 치대는 소리가 날때마다 거품이는 소리가 나서 백건은 견딜 수가 없었다.

"흐응,아..아읏. 윽. 아앙! "
"어떡..흐,누나가, 너, 진짜로...좋다 그러면,...아. 나믄 어떡해...하아..기분 좋아.. "
"아니,..아흐,,,으...나..나는...아..힉..!응...!"

삐걱삐걱 흔들리던 몸이 바닥에 무너진다. 씨발, 은찬이 그렇게 욕을 하며 허리를 부여잡고 허릴 찧어댔다. 이렇게 예쁜데,응, 함부로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아, 아아...흐...주은차아안...!"

절정으로 치닿을것 같은 순간에 은찬은 백건의 목을 졸랐다. 백건은 숨이 막혔다. 은찬은 그의 굵은 손가락 마디마디 모두 힘을 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은찬이 허리를 흔들며 박혀들어와 몸이 밀렸다. 사랑해. 너무 좋아. 하고 은찬이 자꾸 말하는 것 같았다. 백건은 계속. 계속 흔들렸다. 안경이 비스듬히 흘러 내려 렌즈와 맨눈의 시야가 섞여 보이는 세상이 이상했다.이상하다. 전부. 전부 다 이상해. 은찬은 더이상 주은찬이 아닌 것만 같았다. 자신도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것만 같았다. 은찬은 이렇게 하기 싫은 짓거리를 하고. 또 이렇게. 어쩌면 정말로 그를 죽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은찬은 좋았다. 은찬은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죽일만큼 사랑한다고. 무섭고 괴롭지만 싫지 않은걸. 아. 어떡하면 좋아. 백건은 때때로 은찬이 이럴 때마다 백건은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서. 그건 어쩌면 나쁜 주술이나, 못된 귀신같은 것인데 바로 그것이 은찬을, 아니면 두사람 모두를 집어 삼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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