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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카테고리 없음 2015. 12. 19. 18:43




택시



 



 오전 내내 일을 하다 이제 막 숨을 돌리려던 때였다. 쉴 틈이 없이 분주한 공사장 저편에서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놈 하나가 가람을 향해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놈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막대사탕을 삐딱하게 입에 물고 있었고, 물 빠진 야구잠바와 낡은 청바지는 파란색 작업복이 득시글한 공사장 한복판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꼬질꼬질한 나이키 운동화를 질질 끌며 나타난 촌스러운 그 녀석을 눈치 챈 건 가람뿐만이 아닌 듯 사람들이 놈에게 아는 채를 했다. 하나 둘. 돌아가는 시선. 가람은 개중 낯익은 얼굴들이 놈의 엉덩이를 제법 끈적거리는 손길로 주무르거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친한 척 하는 것을 보았다. 백건이 그 환대에 과히 섭섭하지 않게끔 엉덩이를 튕겼다. 그러다 택시! 하고 누군가 놈의 별명을 외치자 백건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낄낄 웃으며 왜, 태워주랴? 하고 대꾸를 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어이, 청가람!”


 그러던 백건이 별안간 그 느릿한 몸짓만큼이나 느긋한 목소리로 가람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가람은 고개를 돌린다. 왜 또 아는 척이야. 성가신 놈이 또 들러붙게 생겼다는 낭패감에 가람은 인상을 썼다. 놈의 시선을 피해버린 게 자존심 상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좀 전까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뭐. 내가 뭐 잘못한 게 뭐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늘 이 시간에 찾아오는 백건을 기다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놈 앞에서 순순히 인정하기는 싫었다. 그러나 좀 전부터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가람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놈은 그를 모른 척 하고 있는 상대를 향해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나 기다렸냐?”

“돼지 새끼 약 처먹었냐.”


 저어기 뒤뚱거리는 공사장 아저씨. 돈 많더라. 백건이 가람의 바로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어쩌라고. 여긴 왜 왔냐. 가람은 담배를 퉤 뱉으며 말했다.


“너 보러.”

“개소리 하지 말고.”

“진짠데.”


거짓말. 그러나 백건의 노란색 두 눈깔은 유난히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 같았다. 가람은 이미 불이 꺼진 담배꽁초를 발로 문지르며 백건의 시선을 피했다. 너 보러 왔다니깐. 그렇게 말하며 입에 문 사탕을 낼름거리는 혀가 붉다. 시발. 가슴이 간질거렸다. 나비같이 팔랑거리는 속눈썹 아래로 쭉 뻗은 눈매가 얄밉게 휘고 있었다.



*



공사장 구석에 있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는 둘만이 아는 비밀장소였다. 그 앞에 서서 가람은 코를 씰룩였다. 이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 좀처럼 익숙해 질 수가 없다. 그러나 백건은 그 음습한 공간으로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익숙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씨발. 이런데 말고 그냥 우리 집에-”

“뭐래. 내가 너네 집을 왜 가냐.”



 그래. 결국 이런 사이밖에는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람은 기분이 퍽 상한 나머지 백건의 말을 떨치지 못하고 인상을 썼다. 그런 가람의 구겨진 얼굴을 내려다며 백건이 씨익 웃었다. 이윽고 낡은 소파 위에 앉히며 가람의 기분을 달래듯이. 대신 너한테 돈 안 받잖아. 응? 너한테만이야. 하고 속삭인다. 어울리지 않게 야살스러운 목소리였다.


“청가람.”


곧이어 커다란 몸이 느릿하게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하고 싶어, 너랑. 깜빡 깜빡 위를 향해 치켜뜬 눈이 가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혀는 여전히 빨겠다.


“미친놈.”


그래봤자 많은 상대 중 한명일 뿐일 텐데. 가람은 그걸 아주 잘 알았다. 알면서도 가슴이 간질거렸다. 나도 미쳤고, 이새끼는 더 미쳤어. 가람은 으르렁거리며 하얀 정수리를 끌어당겼다. 백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내밀었다. 



*



"..와! 하 씨. 이것 봐. 이것 봐. 이 새끼 나 기다렸네.”

“하. 너, 입 좀. 제발 닥치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성기에 백건이 새하얀 얼굴을 내밀며 쪼옥, 입을 맞추며 말했다. 물론 나도 내가 참을 수 없이 꼴린 다는 걸 알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주면 어떡하냐.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그러나 손은 헤매는 법도 망설이는 법도 없이 가람을 쓰다듬고, 흔들고, 움켜쥔다. 아래로 단단히 열이 모이고 있었다. 더운 계절이 아님에도 물구하고 뒷목에 한가득 땀이 났다. 그러다가는 별안간 키스의 여운을 그대로 품은 도톰한 입술이 젖기 시작한 귀두에 쪼옥,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백건 입 안의 온도를 느끼며 가람은 고개를 젖혔다. 백건은 목구멍을 잔뜩 열어 가람을 머금었다. 수축과 이완에 따라 입 안에 물린 가람이 점점 뜨거워지고, 단단해졌고,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가람이 제 뒷통수를 두 손으로 꽉 쥐고 흔들기 시작했을 때, 백건은 짙어지는 살내음을 깊게 빨아들이며 머리를 움직였다. 가람의 허벅지를 쥐고, 고개를 앞뒤로 흔든다. 가람의 반응이 백건으로 하여금 행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백건은 입 안에 선액이 흘러 넘칠 때 마다, 제 입 속 온도보다 더 뜨거워진 성기가 가득 목구멍을 쑤실 때 마다 가람의 안달에 만족감을 느꼈다. 곧이어 잔뜩 단단해진 귀두가 목젖을 찔렀다. 건은 볼이 홀쭉해지도록 소리 내며 가람의 성기를 빨았다.


"읏..," 


 입 안은 금방 하얗게 차올랐다. 숨 막히던 것이 물러나자 정수리가 짜릿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백건은 웃었다. 가람이 길게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욱욱, 헛구역질을 하며 백건이 올려본다. 발갛게 물이 든 얼굴 위로 허연 정액 줄기가 입술부터 시작해 사선으로 튀어 있었다. 


"너 입으로 할 때 존나 많이 싸는 거 같아."

"시끄러 돼지야."

"왜, 빨아만 줘도 못 참겠냐? 좋아 죽겠어?"


 야. 너 얼굴 빨개졌다. 이 놈은 부끄러움이라곤 없는 건지. 창피함은 오롯이 가람의 몫과 같았다. 가람은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백건은 어느덧 바지를 훌렁 벗어던지고선 가람의 위로 올라타고 있었다. 묵직한 엉덩이가 덜 식은 축축한 성기 위로 천천히 비벼진다. 가람은 백건의 옆구리에 어색하게 손을 올렸다.


"그래? 그럼 좀 있어 봐. 내가 오늘 너 천국 보내준다."



*



 하얀 허리가 앞 뒤,  위 아래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굳이 넓히지 않아도 삽입은 쉬웠고 행위는 전적으로 백건에게 맡겨졌다. 가람은 언제나처럼 백건이 벗기라면 벗기고, 핥으라면 그 몸을 핥았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몸에선 짠맛이 났다. 백건이 허리를 내려 앉아 가람의 성기가 밀려들 때 마다 안이 꽉 조여왔다. 가람이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일 때면 백건은 연신 기분 좋은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떨었다. 


"응..하,으응..."


 숨을 뱉으며 기대어 떠는 백건을 내려다보며 가람은 이럴 때 백건이 꼭 말 잘 듣는 애인 같다고 생각했다. 놈은 눈을 얌전히 내리 깔고, 눈가를 적시고, 쾌감에 온몸을 집중하며 안기기 바빴다. 얄밉게 지껄이는 녀석의 입술마저 달디 단 신음을 뱉어내는 것이 낯설었다. 꼭 백건이 너한테만이야. 하고 속삭일 때 같았다.


"아. 청가람..청가람..!"


그래봤자 다 거짓말인데. 


"흣...아윽..응, 응...!"


 가람은 백건의 허리를 움켜쥐고 허리를 쳐올렸다. 백건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신음이 뚝뚝, 끊겨서 들렸다. 팔다리를 얽으며, 몸을 비틀며, 허덕이며 운다. 가람의 어깨에 손톱이 박히는 순간 가람은 그에 맞서 백건의 젖혀지는 목울대를 이로 세게 깨물었다. 하윽..! 아파..아! 백건이 눈을 홉뜨며 소리를 지른다. 그대로 허리를 털었다. 성기가 안으로 말려들자 소리가 달게 울렸다. 결국 가람은 참지 못하고 백건을 밀어 넘어뜨렸다. 앗! 흐,앗..앙!응! 백건이 허리를 뒤틀며 기다란 팔다리로 가람을 꽉 끌어안는다. 퍽퍽. 살집이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낡은 소파가 쉼 없이 삐걱거렸다.


 아. 백건. 백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을 부딪치며, 쉴 새 없이 얽혀들며 가람은 백건의 이름을 불렀다. 핫...응..으응..! 눈 앞이 빨갛게, 그리고 하얗게 정신없이 터졌다. 가람이 뱉어내는 순간에 백건의 아랫배가 꿈틀 요동치며 경련했다. 가람은 조금씩 느리게 허리를 박았다. 막힌 구멍 사이로 허옇게 거품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하. 으.. 흔들흔들 밀리는 백건은 젖은 목소리로 흐느낀다.


 너한테만. 가람은 자꾸 환청처럼 귓가에 남는 목소리를 떨치려 백건의 입술에 제 입술을 파묻었다. 백건은 능숙하게 가람을 받아주었다. 울컥, 감정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났다. 돈만 주면 누구나 태워 준다는 뜻에서 택시라고 불리는 주제에, 그렇다면 오직 제게만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용이람. 꼭 특별한 사이 같이 여겨지지만 가람은 자신이 백건의 수많은 상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가람과 똑같은 남자들이 여러명 있을 테지. 


 가람은 백건의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르는 것처럼 백건은 여전히 택시였다





Posted by 세한(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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